80년대 지구멸망 애니 우주전사 발디오스

저에게 애니메이션이 영화와 다른 점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희망적인 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장르의 만화영화중 저는 당연히 로봇 메카닉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첫째로 치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전 우주 최강의 알 수 없는 적들이 우리의 평화를 깨트려도 정의와 용기로 똘똘 뭉친 젊은이들이 나타나 우리 지구상의 과학력이 모두 결집된 히어로 로봇을 조종해서 모든 것을 되찾아준다는 스토리는 어찌보면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대다수의 연령층이 초등학생이던 70~80년대에는 애니에 절망적인 스토리가 들어간다면 나중에 희망이 500%로 돌아와야 제대로 된 참맛을 느끼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대 그 시절에도 어린이들은 물론 성인들이 봐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인류 멸망으로 막을 내린 작품들이 꽤 있었는데 오늘 소개하는 우주전사 발디오스도 그 중 잊지 못할 하나입니다. 

80년대 중반에서 81년 초반까지 반년 정도 방영되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처참하리만큼 파괴되는 인류의 끝을 보여준 작품이라서 당초 예정됐던 횟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종영됐다고 하는데 국민학교 시절 카피판 프라모델로만 종종 보던 녀석을 국내에 비디오로도 수입되지 못한 메카물들에 대한 전 에피소드가 사진과 글로 소개한 로봇대백과라는 책들로 만나보았을땐 기쁨은 얼마 못가고 좀 설마하는 느낌으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권당 천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그런 싸구려 책에 요즘처럼 컬러 비중이 높았을 리도 없는 온통 흑백에 텍스트로 배경과 주인공들의 대사를 적어둔 내용물들은 오래 보면 좀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섣불리 사지는 않았었습니다. 

대신 끝이 어떻게 되나 궁금하기도 하고 또 너무 오래 보면 문방구 아저씨가 눈치를 줄 거 같아 얼른 맨나중 에피소드를 흝어봤는데 거의 망한 지구를 바라보는 남주인공 마린의 시점을 그려놓은 그 부분이 설마 마지막회는 아니겠지 하고 뭔가 다른 마지막이 있을 거라 믿고는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었는데 결국 거기서 1%도 차이가 없는 결말임을 알고 나서는 혹시나 이 작품이 시청 연령 등급이 좀 셌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여러 평가들중 당시 분위기와는 달리 너무 절망적인 내용이라 저연령층에게 외면을 받았다는 글을 보면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앞서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아쉬운 작품입니다. 

영화상으로는 혹성탈출처럼 인류의 처참한 미래를 그려낸 작품들도 종종 있긴 하지만 이건 아직 희망을 보고 자라도 모자랄 판인 아이들까지 시청가 연령에 포함하기에는 상당히 난해한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TV판이 마무리된 뒤에 극장판도 소개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팬들을 경악하게 한 요소가 크게 달라질건 없었습니다. 

2000년쯤에 일본판 애니메이션들을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었는데 그때 그곳을 찾아가 가장 먼저 감상했던 게 이 발디오스였는데 한회씩 보면서 설마 내가 아는 결말이 아니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릅니다. 

인터넷이 많이 발달하긴 했지만 요즘만큼 궁금한 동영상을 찾아보기는 아직 좀 힘든 때였는데 늦은 시간 집에 귀가해서도 짧게 느낄 수 있는 보람이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용의 배경이 그렇다 보니까 현실보다 더 상큼하게 그려지던 로맨스 구도도 상당히 무거울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주인공 마린은 지구인이 아니라 S-1이라고 부르는 행성에서 날아온 외계인입니다. 

그것도 이 지구를 침략해서 자신들의 새 보금자리로 만들려는 카트라 일당과 동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초기에는 지구인들에게 상당한 고초를 당합니다. 

마린이 살던 S-1별은 갖은 환경 오염으로 황폐화되어 더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시점이고 그런 잘못을 과학자들의 무능력으로 몰아붙이던 중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별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자는 카트라 일당과 오염 정화기를 완성시켜 현재의 S-1별을 구원하자는 측으로 대립하던중 카트라의 음모로 황제는 살해되고 마린의 아버지 역시 카트라측 여자 총사령관인 아프로디어의 일당에게 죽음을 맞습니다. 

여기서부터 이 작품이 저연령층의 호응을 끌 수 없는 스토리가 하나 더 등장하는데 바로 삼각관계입니다. 

일반적인 삼각관계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지만 마린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여성 히로인 2명중 한명은 지구를 방위하는 블루 픽사의 대원인 제이미(좌측사진)이고 다른 한명이 다름아닌 현재 황제를 살해하고 그 자리에 오른 카트라의 오른팔 아프로디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다 마린이 S-1을 탈출하던 중 아프로디어의 남동생이 죽게 되는 바람에 둘 사이의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기에 아직 막장 드라마에 오염되지 않은 당시 아이들에게는 너무 머리아플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덕분에 어린 시청자들은 차라리 이 작품을 포기했지만 작품내에서 가장 힘든건 주인공의 상대역인 제이미였을 겁니다. 

처음 보자마자 마린에게 마음이 끌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히로인인데 횟수를 거듭하면서 아프로디어가 뿜어내는 포스에 밀리기도 하고 그런 아프로디어에게만 자꾸 이끌려가는 마린을 보며 무척 속앓이를 했을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극장판에서는 TV판을 아쉬워했던 시청자들을 위해 아프로디어와 마린의 라인을 좀더 부각시켰다고 하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로봇 자체는 매력적인데 이 작품은 적군과 같은 동족이 팀의 리더로 들어오기도 하고 사랑이 개입되기도 하며 회당 20여분에 해당하는 짧은 러닝타임중에 밝은 분위기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게 등장인물들의 스토리에 촛점이 맞춰지다보니 어린이들이라면 환호할만한 로봇, 그것도 합체, 분리를 하며 최강의 파워를 보여주는 저 발디오스의 비중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거기다 합체시 상반신으로 변신하는 1호기 팔샤반은 마린의 아버지가 생전 제작한 거지만 하반신인 양다리로 변신하는 캐터린져, 발디 프라이즈는 우리 지구에서 개발한 건데 예상하기 힘들만큼의 과학력을 가진 이성인들이 개발한 메인기에다 우리측이 개발한 우주선을 거의 강제적으로 개조시켜 탄생시킴 메카라 그런지 좀 불안해보이는 느낌도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저 3기가 합체할때 가장 통쾌한 부분이 있었다면 스토리 내내 이성인인 마린을 믿어주지도 않고 경멸하기만 하던 다른 대원 올리버, 라이터가 최소한 저 합체 이후부터는 마린의 지시에 강제로라도 따라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지구를 지켜내는 같은 아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연히 상대 적군과 같은 동족을 쉽게 자신들측에 편입시키지 않는 다른 대원들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가 가고 그런 동료들의 믿음을 얻으려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져준다거나 무르게 고개숙이지 않고 나름대로 주관을 밀고 나가는 마린이라는 캐릭터에 딱맞는 리더 등극씬이었습니다. 

 

그리고 뭔가 희망적인 메세지가 있을 거라고 믿고 마지막까지 시청했던 팬들의 멘탈을 붕괴시키고야 말았는데 후반에 보여준 반전 내용이 도리어 그 결말에 한층 더 충격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던 S-1 생명체들이 알고 보니 지구인의 먼 미래 자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이렇게 된 원인은 카트라 일당이 새로운 별을 찾아나서기 위해 사용했던 이동항법의 오류에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카트라인들이 만들어낸 병기에 의해 지구는 쑥대밭이 되어 수십억 인류중 생존자는 극소수가 되고 우리의 터전 지구는 마린, 그리고 그 원수덩어리 카트라가 지겹게 보아오던 어느 별과 아주 비슷한 형태로 변해갑니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라니, 그렇다면 지금 지구인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국 미래에 지구는 그렇게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카트라가 과거의 지구로 되돌아와 같은 상황을 만드는 끝없는 루프를 만들게 된다는 거니 이보다 더 어두운 결말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가만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같은 분야라고 해도 다양한 시청자, 취향, 연령층을 겨냥해서 작품을 만든 거 같습니다. 

저연령층을 겨냥하고 이해도가 좀 낮은 작품들로만 조합해서 국내에서 방영해왔으니 비디오로는 수입된 적이 있다는 극장판 역시 현지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본 사람은 아마 꽤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새롭게 리마스터링해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마다 등급제가 생긴 요즘 조금 높은 연령층을 겨냥해서 재방영한다면 좀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까 싶은 아까운 작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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