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판타지의 탈을 쓴 가족 애니 썸머워즈 추천

머리를 자르러 잠시 밖에 나갔을 뿐인데 한낮에는 이젠 딱 초여름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래서 더운 여름하면 생각나는 작품중에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썸머워즈를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중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은퇴 이후 다시 복귀한다는 소식도 있는데다 이전에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어주셨던 명작들이 여전히 건재하게 우리의 감수성을 건드리고 있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작품전을 열기도 할만큼 요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몇년전 작품부터는 왠지 좀 후퇴하는 느낌이 들어 늘 아쉬웠던 분입니다. 

이 작품도 이전의 늑대아이까지에 비하면 받는 감동은 좀 적은 편이었지만 많은 시대의 변화만큼 우리가 잊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기엔 충분한 작품입니다. 

우리가 유치하고 진부하다는 말을 되뇌이는 것들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살짝 되뇌이고 본다면 땀으로 범벅되어 가까이 누군가 붙어있는 것 자체가 짜증나는 더운 여름이지만 그 더위조차도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가족애를 되새겨주기 위해 무척 애쓴 흔적도 보이는데 감독 이름만 보고 큰 기대라든가 화려하고 요란한 상상만 빼놓는다면 2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이 그리 아깝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 작품은 저 포스터랑 실제 출연진에 대해 좀 혼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포스터의 맨앞에 나와있는 자신만만해보이는 아가씨는 극중 주연인 고교 2년생의 나츠키이고 상대역은 켄지라는 같은 고등학교 1년 후배 남학생입니다. 

처음 감상할땐 저 포스터만 보고 나츠키라는 캐릭터가 상당히 전면전에 부각되는줄 알았지만 실제 내용상으로는 켄지보다 뒤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 애니는 켄지의 시각을 기준으로 모든 내용이 전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어째서 나츠키만 저렇게 전면에 나와있는지는 가장 이리저리 휘둘리고 위기에까지 빠지면서 나츠키의 집안의 평화를 지키는데 한몫한 켄지는 조연처럼 저 뒤에 서있는지의 의문은 내용 중반쯤까지 봐야 아실 듯 합니다. 

그리고 전 작품을 감상할때 작화를 상당히 우선시 하기 때문에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화는 솔직히 제 취향이 아니라 쉽게 봐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도 사람들에게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한 편이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는데 도리어 그 기대를 내려놓은 덕분에 더 편안하게 감상할 수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2009년도에 개봉한 SF판타지, 가족물이고 러닝타임은 114분, 전체 관람가로 역시 가족형 작품입니다. 

 

배경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시대, OZ라는 가상세계 시스템이 현실 세계의 거의 모든 것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됩니다. 

쇼핑이나 관공서, 결제 시스템 같은 건 놀랄 것도 없이 당연하지만 이 OZ에서 활동하는 사용자의 여부에 따라 당사자의 모든 권한이 현세계에까지 미치게 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어서 이곳의 상태가 우리 일상 전반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의 스마트 기능을 몇십년 넘어선듯한 느낌의 무척 편리하고 안전한 가상 세계임을 추구하지만 이 시스템이 자그마치 군사, 행정관련 스킬까지 탑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작품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위기를 겪게 될지를 살짝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니가 시작되면서 보여주는 마치 만화같고 메이플 스토리 2를 보는 듯한 오프닝 영상은 그저 에피소드를 흘러가게 하는 전개용 소재이지 이 작품에서 저런 미래형 소재는 많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이 애니는 사건에 위기를 실어주는 매개체와는 달리 배경 전체는 무척 단조로운 일본의 한 시골에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게임같고 아기자기하고 짧은 영상은 그저 짧게 지나가는 우리 삶의 일탈같은 요소라고 접고 넘어가주는게 좋습니다. 

 

그럼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우측에 넋나간 표정의 주인공이 남주인공 켄지입니다. 

고교 2학년생인데 수학 천재라서 자그마치 OZ의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천재치고는 무척 단순 무식한 면을 많이 보여주는 극과 극의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앉아있는 아가씨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후배인 켄지를 아르바이트라는 명목으로 끌어들이는 아주 앙큼 스킬이 절정에 달하는 여고 2년생으로 켄지보다 1살 위 선배랍니다. 

처음엔 그저 증조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에 함께 가서 지내다 오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갔던 켄지를 아연실색하게 만든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약혼 상대자 역할을 해달라는 거였습니다. 

성인도 되기 전인 고교생들의 결혼 해프닝이 무척 당치도 않을 만도 한데 이렇게 재미난 소재로 와닿는걸 보면 저도 일본 애니에 무척이나 깊게 적응했나 봅니다. 

나츠키의 집안은 높은 분을 모시는 무사집안인데 여자들의 기가 어찌나 센지 남자들의 존재감이 떨어진 자리에서는 온천이 샘솟을 정도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이 집안의 증조 할머님은 가장 연장자이자 가족은 물론 그중 증손녀인 나츠키를 온화한 성품으로 맞아주는 최고 어르신입니다. 

누군가를 강력하게 보필해오던 무사를 남편으로 둔, 그리고 그 남편의 모든 것까지 따뜻한 내조로 보필해야만 했던 강인한 여성으로 일생을 살아온 분인데 이번 여름 방학 할머님을 뵈러온 나츠키 앞에선 그동안에 비해 훨썬 더 신중하고 근엄함을 보여주시는데 이번 여행에 증손녀가 데려온 켄지라는 괘씸한 남자아이가 다름아닌 손녀 사위가 될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 직전까지 자신이 동행한 데 대한 내막을 나츠키에게서 전혀 전해듣지 못했던 켄지이기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평소 내심 속으로만 좋아했던 선배의 자그마치 약혼자 흉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얼떨결에 이번 사건에 말려들게 됩니다. 

하지만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이 당돌한 음모를 꾸민 나츠키가 좋게 말하면 순수한 사랑에 대한 미련이고 좀 솔직히 말한다면 순진한 후배를 자신의 목적대로 악용하는 악역처럼 보이게 된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남주인공 켄지를 살펴보자면 틀림없이 스토리 자체가 켄지 시점에서 흘러가고는 있지만 이상하게 그가 주시하고 있는 인물들이 더 돋보이게 만드는 느낌이고 가장 정의롭고 모든 이들을 포용하려는 용기를 지니고 있고 활발하게 행동하긴 하지만 그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보다는 남을 전면으로 내세워주는 그런 인물입니다. 

중반쯤 가면 가장 전면에서 행동하는 건 켄지인데 어째서 포스터에서는 나츠키보다 뒤로 밀렸는지가 조금 이해가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보냈는지 여부도 모르는 메시지에 덮어놓고 해답부터 계산해서 송신해버리는 단순함 때문에 세계를 위험에 휘말리게 하는 공공의 적으로 등극해버리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천재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얘가 완전히 깨부숴버리면서 갑작스럽게 누명에 빠진 자신도 구하고 잘못된 송신으로 인해 무너져버린 OZ와 현실세계의 위기에서 모두를 구하기 위한 켄지와 나츠키의 가족 모두의 고군부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 널리, 단 하루도 사용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정확히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벌써 한 20년도 더 전에 들었는데 그저 이 매체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각 기관마다 자신들의 영역만 처리하고 있을 뿐이라던데 만약 어떤 개발자가 자신이 개발해둔 실험체를 두고 어느날 종적을 감둔다면 어떤 상황이 될지 눈앞에 보입니다. 

러브머신이라고 불리는 실험용 해킹 AI가 어느날 OZ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현실 세계의 모든 시스템을 붕괴시켜버리는데 덕분에 불과 몇km안에 있는 지인들과의 연락조차 되지 않아 모든 일상은 무너지고 사상자까지 발생하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고 맙니다. 

인간들은 흔히 우리의 모든 것을 가상 세계속에 침투시켜 하나가 되는 것을 꿈꿔왔는데 엄연히 세계간의 경계는 존재하면서도 작은 통로 하나를 통해 그것을 창조한 우리 세계가 무방비 상태로 우왕좌왕하는 걸 보니 아무리 세상이 발전한다고 해도 거기서 그만을 외쳐야 하는 적정선을 우리가 지켜야 할 거 같습니다. 

 

이 사건의 주범이자 피해자가 되어버린 켄지와 나츠키의 가족이지만 이런 일에 너무나도 보통 사람일수밖에 없는 그들이 동시에 이번 대사건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숨겨진 스킬들을 동원해내는데는 정말 재치가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작품은 집안의 최고령 가장이신 증조 할머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보여주고 있는데 나츠키의 집안은 수십명은 됨직한 대가족이 모여 살고 있습니. 

1920년생인 할머님을 시작으로 딸, 아들, 손자, 손녀들, 매일같이 시끌벅적한 나날이 이어지고 자신들이 이어받은 가업을 자랑스러워하는 지극히 가정적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걸 보자니 절로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는 편안한 작품입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상세계, 정체모를 실험체 AI등 시대에 걸맞는 소재가 다분히 보여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컴퓨터적인 영상들이 조금은 한적해보이기도 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나츠키의 집안에 대한 향취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10대들의 엉뚱발랄한 만남이나 사건,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가상세계가 얼마나 더 발전할지를 살짤 미리 더 보여주는 영상 등을 작은 소재삼아 아직 떼어놓을 수 없는 끈끈한 가족애를 더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보였는데 전작들 같은 심오함이나 진지함에서 약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요즘 어떤 주택가를 지나가도 문을 닫아두고 살아서 문을 두드려보지 않으면 그 안에 누가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세상이니까 말입니다. 

장면들을 다시 한번 보다가 가족들이 잠시 들춰보는 앨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다른 작품들처럼 작화가 크게 뛰어나지 않지만 약간 색이 바랜 듯한 사진들로 가득찬 저 앨범같은 느낌의 작품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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