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사고로 고인이 된 불운의 배우 변영훈
- 현실보다 좋아/내인생의 스타
- 2019. 5. 6. 12:46
80년대 후반 조용하고 서글서글한 용모로 조용히 눈도장을 찍으며 나타나 90년대 초반 영화 촬영중 탑승했던 헬기의 갑작스러운 추락 사고로 시청자들의 곁을 떠나버린 아까운 배우가 한명 있었는데 바로 고 변영훈씨입니다.
1989년에서 1990년을 넘어서는 시점에 당시 KBS1 TV에서 방영했던 울밑에선 봉선화라는 일일 연속극이 있었습니다.
주연배우가 지금은 중견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여배우 전인화씨였고 시대극이라 할머님이 무척이나 즐겁게 시청하는 드라마였습니다.
당연히 모든 시청자들의 관심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전형적인 미인으로 손꼽히는 전인화씨였고 드라마의 흐름도 그렇게 흘러갔는데 이야기가 중반부로 넘어갈때쯤 눈에 확 들어오는 캐릭터 하나가 있었습니다.
당시 드라마 스토리가 표독스러운 시어머니 밑에서 호되게 시집살이를 하는 정님(전인화)의 이야기가 가장 큰 구도였었는데 매일같이 뼈빠지게 집안의 큰며느리 역할을 도맡아하면서도 구박만 받지만 시대상황상 남편조차도 어찌하지 못하던 정님의 일상에 따스한 봄햇살을 안겨주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시동생으로 등장한 변영훈씨였습니다.
한겨울에도 빨래를 하기 위해 개울가로 가져가던 빨랫더미를 손수 들어다주기도 하고 시집 살림에 지쳐 하루 해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형수님을 위해 봄이 왔다는 건 알고 사셔야 하지 않겠냐며 개나리꽃을 한아름 꺾어다 안겨주던 한없이 착하기만한 캐릭터였지만 그의 외모는 남자인 내가 봐도 한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도시적이었고 진한 쌍거풀이 한층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꽤 미소년 같고 귀여움이 돋아나는 외모로 미소짓는 인상이 참 잘 어울렸지만 그냥 가만히 있을 때는 그가 얼마나 내성적인지를 누구나 다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1962년생인 그가 TV에 얼굴을 내비친건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갈 무렵이니 한참 생기발랄한 역을 할만한 20대 초중반을 넘긴 시기인데다 초반부터 좀 진지하고 무거운 모습이 트레이드마크처럼 각인되어서였나 봅니다.
그런 그의 행보가 90년을 넘어오면서 역할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누구나 체감할만큼 조금 바빠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모만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당시 TV3사 모든 곳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내비치며 앞으로 그가 보여줄 많은 모습을 팬들이 기대하게 만들었는데 손자병법이라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나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 영화속에서 잠깐 보여준 약간 뺀질거리면서 신세대적인 신입사원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주어 소위 잘나가는 드라마는 될성 싶은 나무만 자리를 틀고 자란다는 말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외의 작품들이 대개 좀 너무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많아서 어쩌다 볼 수 있는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더더욱 튀어보일 정도였으니 상기의 이미지는 한창 시절에 촬영했던 CF중 한장면인데 상대역이 아마 드라마도 함께 했던 김희애씨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변영훈씨가 출연한 단막극도 몇편 되는데 그중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의 안락사 여부를 두고 고뇌하는 아들을 연기했던 작품이 있었습니다.
난 그 작품을 보질 못했지만 미니시리즈도 아니고 단 1회짜리 단편작품으로 1991년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보여주며 진가를 발휘했었는데 요즘과는 달리 그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던 배우 단 1명에게 돌아가는 신인상을 1시간여짜리 단편 드라마로 수상했다는 것 자체는 절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1992년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기가 왔음을 알렸는데 국내 간판급 연기자인 김희애씨와 호흡을 맞추며 연기했던 분노의 왕국이라는 특별기획 미니시리즈가 그 포문을 열었고 당시 내게 드라마 사전제작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했던 청춘극장이라는 드라마에 캐스팅 된 것도 이즈음이었습니다.
배우를 놓고 보면 참 멋지고 괜찮은데 단막극이던 횟수가 긴 드라마건 이왕이면 좀 밝은 역할을 맡는 걸 보고 싶었던 내게 있어 분왕은 그리 끌리지 않는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화제거리를 선사하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긴 했지만 평소 단추 매무새 하나 흐트러짐없이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나라 왕족 마지막 후손이라는 비장함까지 한단계를 더한 그의 모습이 내겐 솔직히 좀 부담스러워서였고 그래서 차후에 보게 될 청춘극장은 제목 그대로 조금 청춘스럽고 푸르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했었나 봅니다.
우리나라 실정상 저녁 10시에 방영하는 드라마 1회를 제작하려면 그 방송시간 몇시간 전에 가서야 가까스로 촬영이 마무리되는 일이 많다고 들었던 터라 저렇게 미리 만들어두면 배우나 스텝진 모두가 편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국내 뿐만이 아니라 해외까지 들락거려야 하는데다 이 무렵 변영훈씨는 연극은 물론, CF, 가정사까지 여러 일이 겹쳐 이미 눈코뜰새없이 바쁜 시기였습니다.
1993년으로 넘어오면서 그가 얼마나 종횡무진 무리한 스케줄을 감행했었는지 더 실감할 수 있게 되는데 아직 청춘극장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하는 중이었음에도 SBS에서는 우리 식구 열다섯이란 일요 아침 드라마를 통해 만날 수 있었고 봄에는 "세상은 내게"라는 미니시리즈, 그리고 KBS에서는 "희망"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쉴새가 없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연기자의 출연료 거품이 심해진 연예계가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한창 잘나갈때 뿌리를 뽑을 작정인가 싶을 정도로 열정을 불살랐던 그에게 신은 그리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비중은 작지만 깨알같은 뺀질이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에게 다시 찾아온 한편의 영화가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줄은 아무도 몰랐었습니다.
많은 영상속에서 등장하는 게 헬기이고 그것에 탑승하는 사람들을 매번 부러워하지만 그 멋진 탑승용 기계가 이제 막 피어나려고 온힘을 다하는 배우를 지켜주지는 못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또래들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그 대신 빠른 시간안에 많은 것을 품고 보여주려는 듯한 의지가 강했던 배우였고 그 사고가 아마 6월쯤 일어났기 때문에 이맘때면 더 자주 떠오르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당시 함께 영화에 캐스팅되었던 출연진들과 시청자는 물론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고 그 여파도 상당히 컸습니다.
그가 출연중이던 드라마들마다 거의 후반부가 남겨진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도 신선한 미소를 보여주었던 그의 얼굴이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공통 과제가 되었고 그 드라마들의 최종회에서는 시청자들이 그 스토리의 마지막이 아니라 배우로써의 변영훈씨를 떠나보내는 심정을 되짚어야 했던 것입니다.
본래 예술가, 문학가를 꿈꿔왔고 어린시절부터 조용한 시골마을 같은 곳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는 게 꿈이었고 그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직전이었다고 들었는데 만약 그가 자신의 꿈대로 인생을 살았더라면 당시처럼 많은 이들이 알지는 못했겠지만 지금쯤 한적한 어느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타고난 성품 그대로 조용한 삶을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 그 꿈이 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우연히 택하게 된 길에서 나태해진 모습을 보인 적도 없는 그였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였던터라 알지 못했던 그의 이후 예정 행보가 디지털 시대가 된 후에야 알려지면서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고군분투해왔는지도 알게 됐고 그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 다른 중견 연기자들중 어느 누구와 같은 선상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있을지를 상상하면 지금 나와 비슷한 연배들에게는 절대 잊혀질 수 없는 배우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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