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역사의 길목을 터주신 만화가 윤승운 화백님
- 현실보다 좋아/내인생의 스타
- 2019. 5. 15. 13:12
요즘과는 달리 예전 만화계엔 모든 장르에 어느 정도 교육적이고 내용과 교훈을 담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창 자라나는 세대들이 자신의 꿈에 좀더 친근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무척 장난스럽고 실제로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만화속 캐릭터들의 멈추지 않는 말썽 행보를 발판삼아 우리의 호기심이나 상상력을 우리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도 많았습니다.
만화가 윤승운 선생님의 작품도 그중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먼저 포스팅했던 길창덕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명랑만화라는 장르의 길을 가신 분이지만 선생님의 작품중엔 특히 어린이들이 자라나서 세상으로 나아갈만한 사회성을 미리 예습할 수 있는 작품들도 많았고 학교에서 공부하기엔 너무 골아픈 역사 인물들을 코믹한 그림체로 재구성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시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어릴때 가장 먼저 본 선생님의 작품은 아슬아슬 발명왕이라는 울간 잡지책의 연재만화였는데 매달 엉뚱한 발명품으로 집안은 물론 학교, 동네를 발칵 뒤집어놓는 주인공 왈식이의 일상속으로 빠져드노라면 읽고 또 읽어도 하루해가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 문방구 한켠 단행본 진열장에서 많이 낯익은 그림체의 만화책을 발견했었습니다.
바로 요철 발명왕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선생님의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아슬아슬보다 몇년 전에 연재하셨던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은 간간이 눈에 띄는데 아슬은 예전의 추억을 찾아볼 길이 거의 없어 참 그립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도 이미 완결이 난 연재만화를 이렇게 단행본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각 출판사들의 사정으로 이렇게 단행본을 출간하는 선생님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비슷비슷한 만화를 돈아깝게 뭐하러 사오냐고 하셨지만 저에게는 그림체라든가 소재가 비슷하다고 해도 제가 몰라서 놓쳤던 선생님의 작품을 다시 구할 수 있어서 기쁘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슬아슬 발명왕처럼 수많은 발명품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겹치는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정말 선생님들의 아이디어는 정작 타겟이었던 어린아이들보다 더 무궁무진하셨던 거 같습니다.
아이들의 꿈이나 상상력이 무한했다기보다는 만화가 선생님들 같은 분들의 창작물 속에서 도리어 우리의 정신세계가 넓어졌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니까 말입니다.
당시 어린 아이들이라면 방학때 부모님들과 물놀이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물놀이를 싫어하는 왈식이가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친구 삼촌이 타고온 오토바이의 모터를 몰래 떼어내 상어형 탑승물을 만들어 상어 소동을 벌이는 에피소드는 학창시절 여름방학이면 늘 기억나곤 했었습니다.
1943년생이시니 남북 분단 시대를 경계로 가시밭길만 놓여있던 시대를 살아오신 분으로써 선생님도 데뷔 후 길창덕 선생님의 제자로 발을 내디뎌 명랑만화 대부의 길을 지켜오신 분이십니다.
선생님이 그리신 작품중엔 위에 쓴 발명 시리즈도 유명하지만 두심이 표류기, 병길이의 모험, 탐험대장 떡철이 같은 오지에서 겪는 모험이야기나 최근에도 어린이들의 역사학 공부에 빼놓을 수 없는 교육용 만화책 맹꽁이 서당 같은 역사의 대장정을 써내려간 작품도 있습니다.
쉬운 듯한 내용 일색인 명랑만화 장르속에 아무리 세상 경험이 많은 분이라도 접근하기 힘든 역사 이야기를 매달 실으실만큼 우리 역사에 관한 지식은 다분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민간인의 신분으로 접근한 만화 역사이기 때문에 오류가 심한 허구 논란도 끊이지 않을 만큼 시끄러운 일도 겪으셨다고 합니다.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국민학교 시절부터 봐오던 맹꽁이 서당 덕택에 최소한 선대왕들의 이름이나 가족 관계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저장했으면 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 세대를 살아온 지금의 기성 세대들을 이만큼 역사에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은 없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선생님이 그리신 조금 다른 소재의 작품중에 떠오르는 건 모험시리즈입니다.
첫째로 탐험대장 떡철이는 오래전 폐간된 새소년이라는 월간 잡지에서 연재하던 인기 만화였습니다.
일반인이 가본 적이 없는 오지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수수께끼의 터널에 혼자 들어갔다가 조선시절 자기처럼 멋모르고 모험여행에 나섰다가 유골이 된 유령과 만나기도 합니다.
또 좀더 세계를 넓혀 남극 오지 탐험에 나갔다가 죽음 직전 구출되기도 하고 외계인들의 도움을 받아 멸망 위기에 놓인 인류를 새로 개척할만한 별을 찾으러 나갔다가 홀로 그 별에 고립되기도 하는 등 목숨이 오락가락할만한 스케일 큰 여정을 떠나기도 합니다.
물론 당시만 해도 뉴스에도 몇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남극 오지여행이라든가 아직 우주 탐사의 길이 지금만큼 열리지 않았던 만큼 상상하기 힘들었던 다른 별탐험이니만큼 죽음이라는 소재까지 다뤄야 했지만 마지막에 그것이 다 떡철이의 꿈이었던 걸로 가볍게 넘어가는 등 아이들에게 현실적 충격을 최소화하느라 애쓰시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두심이 표류기는 친구가 보던 단행본을 곁에서 흘낏 본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고 대신 비슷한 모험 여행 소재인 병길이의 모험이라는 작품이 생각납니다.
이것도 어깨동무라는 잡지에서 연재했는데 절친한 친구가 할아버지와 여행을 가는게 부러웠던 병길이가 몰래 따라서 숨어들었다가 미개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섬에 고립되면서 그곳 주민들과 동화되고 날마다 새로운 소동을 벌이다가 때마침 그곳을 탐사하러 온 해외 모험가들과 조우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는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선생님은 현대물보다는 조선시대적 에피소드를 상당히 많이 다루셨었는데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초중고 시절에는 학교마다 학생들만을 위한 신문이 배달되었었는데 날아다닌 바위의 전설이라는 만화는 그때 그 신문에서 보았고 두심이의 사촌쯤으로 보이는 암행어사 한심이도 그 신문에서 연재하는 걸 본 기억이 납니다.
퓨전이다 뭐다 해서 억지로 현대적인 요소와 결합하지도 않고 아이들의 눈에 맞추어 순수하게 그 시절의 묘미를 맛깔나게, 그리고 익살스럽게 풍자하고 그려낸 만화는 윤승운 선생님의 창작물이 가장 최고였습니다.
그중 맹꽁이 서당은 아이들이 너무 만화에만 빠져산다고 부모님들의 아우성이 이만저만하지 않은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학업 보조 서적으로 발간될만큼 어른들의 반응도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1990년을 넘어서면서 10년 가까이 연재하던 맹꽁이 서당도 훈장님이 다른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러 떠나는 좀 슬픈 결말로 막을 내렸었는데 그 무렵 오랜 시간동안 어린이들을 위해 수많은 명작들을 남긴 각 월간 잡지들이 너나 할것없이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간될 때였습니다.
같은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맹꽁이 서당이 막을 내린지 얼마 안가서 당시 이 작품을 연재중이던 잡지 보물섬도 폐간되고 말았었는데 만약 잡지사들의 경영난이 해결되었더라면 저 추억들이 지금도 유지되지 않았을까 하는 짠한 생각이 찾아옵니다.
웃으시는 인상이 만화속 주인공들과 상당히 닮으셨습니다.
귀엽고 미남미녀가 가득한 멋진 작화는 아니었지만 남다른 독특함과 소재만큼은 진지한 만화들과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주셨습니다.
제가 처음 접한 소년잡지속 작품중 가장 좋아했던 아슬아슬 발명왕은 늘 부록 만화책의 맨 나중에 수록이 되어있었습니다.
만약 맨앞에 수록되었다면 아슬아슬만 읽고 뒤에 수록된 다른 만화들은 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뭐든 가장 좋아하는 건 제일 나중으로 미뤄두었다가 봐야 한다는 좀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로 자라다 보니까 덕분에 앞에 있는 만화들도 슬슬 탐독하고 새로운 재미를 배우는 노하우도 생기고 기다린 만큼 더 맛깔나게 선생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젠 선생님들의 새 작품이 아니라 옛작품들의 재발간을 기뻐하는 게 순리가 되어버렸지만 언제나 창조해내신 캐릭터들의 웃음을 고스란히 손수 보여주시는 따뜻한 미소로 우리 곁에 남아주시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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